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영향 (문단 편집) ==== 북한 공업기반 파괴 ==== 남한과 다르게 북한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해 엄청난 폭격에 시달렸다. [[미군]]이 주축인 [[유엔군사령부|UN군]]의 막강한 공군 전력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북한군이 보일 만한 곳이라면 무조건 공격 대상으로 삼아서 폭격을 박아댔다. 2층 건물 이상이면 닥치고 폭격을 뿌려대니 남아날 재간이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미군 폭격기 조종사가 "[[커티스 르메이|북한은 석기시대로 돌아갔다]]"고 할 정도. 바다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 해군력이 빈약한 북한으로서는 미군의 함정이 대놓고 돌아다니는데도 막을 도리가 없었고 역시나 폭격이 날아왔다. 다만 [[B-29]]로 [[네이팜탄]]을 몇백 톤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북한군에게 직접적으로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한 왜관-다부동 전투 융단폭격 같은 사례도 있다. 사실 한반도에는 이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일제강점기의 여러 곳에 공장들이 남북에 1940년도 기준으로 4:6비율로 거의 온전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제공 제해권을 장악하지 못한 북한에겐 평양 폭격이나 [[원산 포위전]] 등이 굉장히 치명적이었고, 원산의 경우 공군뿐 아니라 해군도 같이 폭격을 실시하는 바람에 원산은 휴전협정이 맺어지는 그 순간까지 말 그대로 불지옥이었다. 이 당시에 미국의 폭격기사령부는 폭격기 수를 2차 대전 이후로 크게 줄이지 않는 등 막강한 공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기간은 길었고 땅은 좁았으며 이런저런 난항을 겪었던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때에는 폭격 교리와 장비도 완성 이후 테스트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전쟁보다 훨씬 짧은 기간 안에 일어난 일본에서의 공습피해를 생각해 보면, 전쟁기간 중 상대적으로 북한에 훨씬 심한 폭격을 가했을 것이다. 전쟁 후 [[평양시]]엔 멀쩡한 건물이 2채밖에 없었고[* 멀쩡한 건물 중 하나는 문화재인 [[보통문]]이니 실제로 멀쩡한 건물은 1채뿐이었다.] [[원산]]에는 함포사격까지 겹쳐서 남은 건물이 없었다는 보고서도 있다. 해당 문서의 사진을 보면 달 표면마냥 크레이터밖에 없다. 자료에 따르면 미 공군은 전쟁이 시작된 그 주에 제공권을 확실히 장악했고, 부산으로 몰렸을 때에 이미 전략폭격 목표를 찾을 수 없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공군은 계속 하늘을 날았으며, 전선고착 이후에는 철도와 저수지에 대한 폭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자료들의 근거들은 미군의 작전 보고서와 그 사진들이다. 이러한 폭격 때문에 북한 정부는 굴을 파고 지하에 공장, 시장 등등 모든 생활 기반들을 마련하여 버텼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월맹군과 비슷하게 산 듯. 이는 KBS에서 방영한 10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중 7부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평양과 원산 등에 있는 대규모 공업단지들이 한국와는 다르게 모두 파괴됨은 물론 평양과 원산은 아예 허허벌판이 되었다. [* 이 때문에 북한은 오늘날까지도 방공망에 유독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전쟁 직후 소련과 공산권 위성국가들은 한국에 필적할만큼 북한에 대규모의 지원을 펼쳤고 대한민국이 1960년도까지 연평균 5% 성장에 머물 때 1960년도까지 연평균 20% 성장을 해서 대체로 복구되었다고 한다. 특히 70년대 초까지는 북한 경제의 황금기로 한국에 비해 상당히 잘 살았다. 70년대에 비데를 호텔에 설치하고 컬러TV를 보급했다. 월남인사의 회고록에는 평양에서 동유럽산 캐비아와 와인을 맛볼 수 있었던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경공업 투자를 등한시하고 [[비날론]]을 고집한 경제에서 그런 호황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낸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형제국가를 우대하는 내부 무역과 원조, 차관에 의지한 것이기에 공산권이 무너지고 북한이 신용불량국가가 된 뒤에는 죄다 끊겼다. 게다가 [[고난의 행군]]의 단초가 되는 병크 중 상병크인 [[주체농법]]을 1970년 초부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북한/경제]] 문서를 참고하면 좋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